한국 영화

헤어질 결심 (2022)

캐니로그 2023. 4. 20. 16:26

 

헤어질 결심에서 가장 큰 분기점이 되는 장면은 바로 저 장면일 것이다. 분기점은 저기였고 영화를 계속 생각하게 하는 지점이자 주인공조차 영화에서 다시금 생각하는 지점이 바로 저기였다. 제목 그대로 <헤어질 결심>이 이루어진 장면이자, 역설적으로 헤어지기 싫다는 걸 깨닫게 되는 지점이.

 

박찬욱 영화 중에 가장 박찬욱 영화 같지 않은 영화였다. 그러나 지금까지 봤던 박찬욱 영화 중 가장 좋았고 가장 많이 다시금 생각하게 될 영화다.

 

오늘 또 장면 하나가 계속 생각에 맴돈다. 여자 주인공은 남자가 “사랑한다”라고 말한 순간, 자신의 사랑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걸 들은 남자는 자신은 “사랑한다”라고 말한 적이 없다고, 언제 그런 말을 했냐고, 경찰답게 경찰처럼 말한다.

중간에도 장면으로 나오고 뒷부분에 남자 주인공인 음성녹음을 듣는 부분에서도 다시 들을 수 있지만, 남자는 “사랑한다”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여자 주인공이 말한 대로 남자는 사랑한다라고 했다. “사랑한다”라는 문장을 안 썼을 뿐.

영화에서 가장 아름답고 놀라운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었다. “말하지 않았지만 말했다.”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말한 사람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고, 음성녹음을 다시 듣고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그러나 듣는 사람은 분명 그 말을 들었다는 것을.

영화의 끝에 도달해서야 겨우 남자는 여자가 한말은 온전히 이해하게 된다. 너무 늦었지만, 그래도 자신을, 자기가 한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측면 해서는 해피엔딩으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현실엔 말한 사람은 말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들은 사람은 들었다고 말하는 현실이 산재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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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대화를 할 때, 실제 음성언어가 커뮤니케이션에서 차지 하는 비율은 30%에 불과하다는 연구가 있다. 그 30% 중에서 우리가 맥락을 숨기고 혹은 상대의 의도를 잃어버려서 소실되거나 잘못 이해하는 비율이 얼마나 될까? 그렇게 따지면 우리는 대화를 하고 있지만, 사실은 스무고개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너무나 대화에 익숙해져 버렸기 때문에 이러한 사실을 까먹고는, 내가 한 말을 상대방이 이해하기를, 반대로 상대방이 한 말을 본인이 다 이해했다고 그냥 넘겨짚기 마련일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이걸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계속해서 노력하는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모두의 어린 날이 그랬듯, 두 발로 걷기 위해 수 많이 넘어졌던 것처럼, 계속 넘어지는 걸 받아들이고 꾸준히 두 발로 서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것뿐이라는 것이 이 영화가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 더 많이 이야기해야한다.